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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Memories (16)
시간은 흐르고
오래전에 혼자 인도에서 런던으로 가는 밤 비행기를 탔다. 브리티쉬 에어(BA). 인도에서 국제선은 거의 모두 한 밤중에 출발한다. 선진국 중심으로 비행시간표가 짜지기 때문이다. 여기저기를 거쳐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출장길이었는데 이 구간은 비지니스 좌석을 받았다. 회사 비행 편 담당 여사원이 단 몇 시간이면 될 한 구간을 열 몇시간 넘게 한참을 돌아서 가는 좌석밖에 못 잡아준 게 미안해서 슬쩍 이 구간을 올려 준 것이라고 했다. 집 떠난지 벌써 여러 주가 지나서 피로감도 쌓여 있었고 마땅히 쉬어야 할 야밤에 긴장되이 겪어내야 하는 공항 시큐리티 통과, 탑승수속 그리고 출국심사 과정이 피곤스럽다. 비행기 이륙 직전에 옆 자리에 젊은 인도 아가씨가 앉았다. 이코노미에서 좌석을 올려서 온 거 였다. 평범한 ..
오늘 아침 돌연 별이된 금이 금 ~ 2015.5.11 자기가 즐겨 찾던 케이지 안에서 자는듯 평화롭게 별이 되었다. 더 이상 그 의젓한 모습과 파란 눈 부드러운 털을 보고 만질 수 없다. 적어도 한 십년은 같이 갈 줄 알았는데.... 그렇게 뜬금 없이 가다니 허망하다. 죽음으로인한 이별의 비가역적 절대성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다. 내 마음을 아는지 처량맞게 부슬 부슬 내리는 비. Blogsy로 포스팅 되었습니다.
이제 나의 군대이야기도 끝나간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거의 다 나왔고 남은 것들은 보안부대 업무나 당시 상황과 너무 밀접하게 관련된 이야기 등등' 이기 때문에 쓸 수가 없는 것 들이다. 군단장에게 경례 아니 결레 어느날 졸병과 함께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앞에서 일군의 장교들이 마주쳐 오는게 보였다. 반짝 반짝 대위 계급장을 단 사람이 맨앞에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이들을 지나치려는데 그 앞장 선 사람 뒤에 따라오는 장교들이 영관급인게 보였다. 이상해서 앞장 선 사람을 곁눈으로 보니 대위가 아니고 3성장군이다. 군단장이었다. 허걱 바로 옆으로 돌아서 군단장을 쳐다보며 경례를 했다. "충성!" 군단장은 지나치다 말고 돌아서 경례를 받았다. 그 일행이 지나가는데 켕겨서 돌아보니 역시 군단장 전속부..
홍사민 (1957 ~ 2013.10.31)
어느 보안하사관 이야기군단사령부 안에 있는 군사우체국에 정기적으로 우편검열하러 오는 보안하사관 모 하사가 있었다. 오면 보안반에 들리고는 했는데 내가 있으면 같이 사무실 밖에 나가서 담배 피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사람이 똘방똘방해 보이는 그는 제대신청을 해도 제대도 안되고 해서 최후의 수단으로 보안교육대에서 받는 보수교육과정에서의 시험에 백지를 내고 돌아온터였다. 그의 아버지는 목포인지 군산인지에서 무슨 사업을 했는데 밀수도 했더란다. 밀수가 본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의 아버지에게 정기적으로 사복바지에 넥타이 매고 장교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검은 짚차를 타고 찾아 와서는 돈을 받아가는데 자기 아버지는 돈을 주면서도 그저 굽신 굽신. 고등학생이었던 그의 눈에 그 장교점퍼들이 굉장히..
제대를 몇 달 앞두면 정말 시간이 안간다. 1군단에서의 생활은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사건 사고로 채워져 가며 느리게 흘러갔다. 사고는 주로 저녁에 밖에 나가면서 생기는데 밖에 나가는 주된 이유는 서울, 경기 일원의 동기 녀석들이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나는 마다하는 법 없이 나가서 같이 어울렸는데 한 네번 정도 반장한테 들켜서 찐빠(ㅎㅎ 군대용어?) 먹고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고양 파출소를 부수고 또 한번은 놀러온 녀석이 1군단보안부대 선임하사 모 최고 고참상사의 아구통을 돌리는 바람에 큰 사고가 돼서 좀 기합도 받고는 했지만... 주침야근조장인 나는 근무를 서지 않아도 됐다. 그래도 시간을 죽이는 방법으로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밤근무를 섰다. 내가 밤근무를 서면 졸병들은..
특수보안대의 망신군단사령부에는 여러 타부대 병력들이 들어와 있었다. 공군, 국방부 파견대... (생략). 이 국방부 파견대는 적정탐... 생략... 그들의 근무지는 군단 통신벙커 외곽으로 문이 나있었는데 '특수보안' 이라는 문패만 하나 달랑 걸려 있었다.어느 날 보안반에 군단에 들어와 있는 타부대 병력 현황을 파악 보고하라는 연례행사 업무가 주어졌다. 보안반의 김하사가 직접 다니면서 파악하겠다고 돌아 다녔다. 김 하사는 장기하사였는데 사람이 아주 온순하고 착했다. 결혼도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김하사가 타부대 병력을 파악하고 다니던 과정에서 '특수보안' 문을 두드렸다. 어떤 장교머리의 츄리닝 입은 친구가 문을 열고 나와서는 여기 누구 몇 명이 근무하냐고 묻는 김하사를 아래 위로 훌터보더니 "몰라! 가..
헌병대장 어느날 아침 본대에서 튀어들어오란다. 아마도 그 전날 밤에 고양삼거리에 나가서 술마시고 했던게 소식이 들어갔던가 해서 기합을 주려고 부른거였다. 후문으로 나가서 버스 정거장에서 멍하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본대가 있는 삼거리까지는 버스로 두 정거장인가 한 정거장인가 했다. 왠 군용짚차 1호 차가 내 앞으로 왔다. 멍하니 쳐다봤다. 그 차는 내 앞을 지나 반대편 언덕 위로 올라갔다. 군단헌병대였다. 조금 있더니 헌병대 정문에 근무를 서고 있던 헌병 두 명이 구보로 뛰어 내려왔다. 그러고는 나를 검문했다. 나는 처음으로 헌병의 검문을 받아보는 거였다. "소속이 어디입니까?" 난 병장이니까 당연히 말을 높혀야쥐 이넘들아. 장난기가 발동했다. "나? 국군인데 왜?" 헌병들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
2기갑에서 한달 여를 잘 놀다가 느닷없이 1군단사령부 영내에서 근무하는 통신보안조에 배치됐다. 이때쯤에는 병장으로 진급해 있었다. 1군단조는 안모하사가 조장을 하고 있었고 이국ㅎ일병, 그 아래 신병 하나가 있었다. 안모하사는 나보다 어리고 군대생활도 짧았다. 서로 불가원 불가근 했는데 얼마 있다가 전출 가고 내가 조장을 했다. 군단 내에 있는 보안반에는 이모소령, 상사, 하사, 서무병 김병장, 운전병, 방위 들과 ASP 1명이 있었다. 크진 않지만 단단한 체구의 보안반장은 육사 출신이었는데 다른 보안반장들과는 달리 보안대 티를 전혀 안냈다. 언젠가 당시 1군단 참모인 정순덕대령(하나회, 후에 민정당 사무총장)과 같이 이야기를 하는데 보니까 부동자세를 취하고 군대식으로 말하고 대답하는 등 깍듯이 상전으로 ..
78년 6월 30일 입대해서 논산신병훈련소, 원주통신훈련소, 보안사를 거쳐 그 해 말에 제515보안부대로 배치되었다. 515에서는 본부 군수과로 명령이 나서 별로 보안대스럽지 않은 515본부대에서 80년 5월까지 보냈다. 지루하던 군대 생활은 79년 10.26 이후 급격히 변했다. 80년 5월 신군부측의 역쿠데타 대책의 일환으로 보안사의 수도권일원 대전복업무 인원을 늘리는 과정에서 내가 차출되었다. 광주사태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이었다.1차로 나를 포함해서 6명인가 같이 전출되었는데 상병이었던 내가 가장 고참이었다. 우선 용인에 있는 3군사령부 영내에 있는 3군사령부 보안부대(1003)로 갔다. 515에서 일선 배치되는 인원은 현지 보안부대로 배속된다. 1003에서 하루를 지내고 그 다음날 각자의 배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