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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es

군대이야기 - 1군단 - 2기갑여단

고부운 2013. 9. 21. 08:14

78년 6월 30일 입대해서 논산신병훈련소, 원주통신훈련소, 보안사를 거쳐 그 해 말에 제515보안부대로 배치되었다. 515에서는 본부 군수과로 명령이 나서 별로 보안대스럽지 않은 515본부대에서 80년 5월까지 보냈다. 지루하던 군대 생활은 79년 10.26 이후 급격히 변했다. 80년 5월 신군부측의 역쿠데타 대책의 일환으로 보안사의 수도권일원 대전복업무 인원을 늘리는 과정에서 내가 차출되었다. 광주사태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이었다.

1차로 나를 포함해서 6명인가 같이 전출되었는데 상병이었던 내가 가장 고참이었다. 우선 용인에 있는 3군사령부 영내에 있는 3군사령부 보안부대(1003)로 갔다. 515에서 일선 배치되는 인원은 현지 보안부대로 배속된다. 1003에서 하루를 지내고 그 다음날 각자의 배치 지역으로 가는 방식이었다. 1003 사병들은 일반병과 똑 같이 바짝 깍은 군바리 머리였다. 평소 군사령관이 대장인데다가 부대가 3군사령부 영내에 있는 관계로 보안부대랍시고 튀는 행태를 보이기는 쉽지 않았겠다. 또 당시 신군부 주역 중의 한 명인 유학성 장군이 3군사령관을 하고 있어서 더더욱 조심하고 있을 터였다.

저녁 먹고 1003 내무반에서 기존 1003 사병들과 같이 TV를 보는데 광주사태에 대해서 뉴스가 나왔다. 반란군이라는 표현을하며 시위대를 비췄는데 나랑 일행인 일병 녀석이 뜬금없이 중얼거렸다. "저런 것들은 확 땡크로 깔아버려야 되는데..." '이 쉐리 차지철이도 아니고 왠 탱크 타령?'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함소리가 나면서 1003 일병 어떤 녀석이 이 땡크 운운한 녀석에게 발차기를 날리며 달려들었다. 모두들 나서서 뜯어 말렸다. 나중에 1003 고참이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사정 이야기를 해줬다. 집이 광주인 친군데 소요사태가 커지면서 전화연결도 끊어지고 광주가 폐쇄 된데다가 TV에서 연일연야 광주 폭동의 현장이라며 광주MBC가 불타는 장면 및 시민 반란군의 시위라며 자료화면을 방송해대고 있어서 애가 걱정으로 계속 잠을 못자고 초죽음 상태였는데 탱크 운운소리를 듣고는 폭팔해버린거란다.

그날 저녁 당직사관이 내무반에 들어와서 정신교육을 실시했다. 보안사(506?)에서 이대 근처에서의 반정부학생모임을 덮칠 계획이었는데 사병 한 녀석이 자기 여자친구가 그 명단에 있는것을 보고 몰래 모임에 참석치 말라고 연통을 주는 바람에 체포계획이 틀어진 사례가 있었다고.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각자 보안에 유념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다음날 경기도 고양군에 있는 1군단보안부대(101)로 배치되었다. 1군단 보안부대는 당시 고양 삼거리 근처의 언덕 위에 위치한 아담한 부대였다. 그 정문에는 병장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나는 이들에게 경례를 부쳤는데 이들이 경례를 안받고 쭈뼛거렸다. 알고보니 방위들한테 기간병 군복을 입히고 위병소 근무를 시킨거였다. 방위들한테 눈 한번 째리고는 반장 김모대위와 강모상사가 있는 통신보안반 사무실로 가서 전입신고를 했다. 내 배경부터 캔다. 당당히 말했다. 보안사 김병ㄷ장군이라고. 보안사에 장군은 사령관 포함 2,3명 밖에 안된다. 군대생활을 할만큼 했던 관계로 이럴 때 이리 저리 빼고 그런거 없습니다고 할 필요 없음을 알고 있었다. 1군단통신 보안반장 김대위는 3사 5기였다. 당시 3사는 5~13기까지가 모두 대위를 달고 있었다. 그러니까 반장은 8년째 대위다. 소령진급에 목숨이라도 걸 상태인데 사병 녀석들이 자기가 연줄이 닿았다면 구세주일터인 그런 별중에 별같은 이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줏어 삼킬때 무슨 생각이 들까? 육사 말고 3사 나와서 군인을 직업으로 한다는 것은 ... 너무 차별이 심하다.

1군단보안부대 2기갑여단 보안반

나는 몇 일 있다가 1군단사령부 직할대인 제2기갑여단으로 배치 되었다. 2기갑은 파주 금촌 봉일천 어딘가에 있었는데 12.12 때 신군부측에 서서 탱크를 동원한 부대였다. 2기갑 통신보안조에는 농촌아저씨 마냥 구수하게 생긴 제대가 얼머남지 않은 모병장(희안하게 이름이 기억 안난다. 그냥 모병장이라고 하자)과 일병 한 명이 있었는데 상병 고참인 나를 배치 한것은 그 후임으로 생각하고 넣었나 싶었다. 모병장은 내게 고참 노릇을 안하고 손님으로 대접했다. 실렁 실렁 통신보안, 감청업무 전반 및 주의할 점 등을 배웠다.

여기 2기갑에서는 정말 마음 편한게 잘 지냈다. 반장과 주임상사는 어쩌다 한번씩 들렸다. 이들이 2기갑으로 출발하면 통신보안반서무병으로부터 미리 연락이 왔다. 모병장이 술을 좋아해서 저녁마다 같이 부대 밖으로 나가서 술을 마셨다. 누구 하나 나를 건드릴 사람도 없고 눈치볼 사람도 없었다.

2기갑에서 한 달인가를 잘 지냈는데 갑자기 반장이 와서는 1군단사령부에서 근무하란다. 아 행복 끝이다. 1군단은 본대(101)에서 가깝기도하고 반장 선임하사가 바짝 신경쓰는데니까 2기갑에서와 같은 자유는 없다.

 

2기갑에서의 기억

하극상

2기갑 보안반에는 조용한 성격의 내 군번 정도의 A가 서무병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SG대 대학원까지 다니고 왔다고 했는데 나이 차이가 나서 같이 어울리지는 않았다. 장교들이 부임해오면 보안반에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면 자력표(인사카드)를 받고 지문을 채취해서 다시 신원조회를 하는 것이었다. 부임과정에서 사람이 바뀌지 않은 정확한 그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한번은 2기갑으로배치된 신참 ROTC 소위가 보안반에 와서 절차를 거치는데 서류 받고 지문 찍는 보안반 사병(A)에게 되게 거만 건방을 떨었단다. 넌 사병 난 장교. 이 소위가 계속 경박스러운 반말을 해대니까

A는 참고 참다가 갑자기 그 소위의 빰을 갈기고는 "이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주접을 떨어. 확 패 죽여버릴라 이눔 시키"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보안부대 하사관 장교 등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버린다. 보안부대 정서상 보안부대 사병이 일반부대 하사관 장교를 패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특별한 사안이 없는 상태에서의 그 하극상을 눈앞에서 뻔히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무튼 보안반 운전병에 방위에 세불리한 소위는 맞는 수 밖에 없다. 거기서 만약에 반항하면 더 맞지.

나중에 A가 화를 낸 이유를 알고보니 그 ROTC 소위는 SG대 출신에 자기과 후배였다나 뭐라나. 한참(?) 어린 후배가 반말 찍찍 해대면서 세상물정 모르고 깝죽거리니까 분을 참지 못하고 패버린것이었단다.

군대에서 하극상을 당하면 반응은 딱 2 가지이다. 창피해서 묻어버리거나 상부나 관계기관에 보고하고 문제화 시켜서 보복하거나. 1대1로 남들이 모르게 당하면 대부분 전자를 선택하고 ... 위 경우는 바보가 아닌한 당연히 전자의 경우가 된다.


대남 TV 방송 시청

2기갑에 있으면서 황해도 해주에서 방송하는 대남TV 방송을 원 없이 봤다. 보안대에서 본다는데 아무도 뭐랄 사람이 없다. 처음 접하는 이북 방송이 신기해서 한동안 열심히 봤다. 그런데 별거 없는 정도가 아니고 이놈들 또라이다. 동맥경화 같은 뇌경화에 걸린게 분명하다.

몇 날 몇 일을 봐도 김일성 찬양, 찬양공연, 생가 소개, 김일성 업적소개 ... 김일성 김일성 김일성,,, 끝간데 없이 김일성 타령이었다. 정말 이 방송을 보는 남쪽 사람들이 그런것들을 보고 김일성을 흠모하고 세뇌될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 사람들은 진심으로 그리 믿는 모양이었다. 사상적 동맥경화에 걸린 아니 종교에 빠진 무뇌아들이었다. 사고의 자유나 능력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런 결론을 내고 다시는 그 개떡 같은 이북방송을 보는 시간낭비는 안했다.

무단 외박

서울 515본부에 있을 때 거의 매주 한두 번 정도는 나다니던 버릇 때문에 기갑에서 한 2주 동안 외박을 못나가니 답답해졌다. 그래서 어느 토요일인가에 모 병장에게 이야기하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집으로 도망갔다. 버스타고 삼송리 검문소를 통과 했다가는 검문소 근무조에게 들켜서 혹시라도 반장/주임상사 귀에 들어갈 염려가 있어서 기차역으로 가서 서울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집에 갔고 부대로 귀대할 때도 역으로 했다. 군대생활 하면서 처음으로 해본 무단외박이었다. 515본부에 있을 때는 무단 외출 외박을 나갈 이유가 없었다. 나가고 싶으면 어떻게하든 나갔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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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교때 집에서 육사에 가는 것은 어떠냐는 소리가 잠깐 있었다. 육사에 갈 수 있었고 없었고를 떠나서 어림도 없는소리다. 천성이 어디 매이는것을 싫어하는 자유혼(방관자적인 서울사람 기질에 반항적이라는 것인데 포장좀 하자. ㅎㅎ)에 육체적인 근면을 강요받기 싫어하는(게으르다는 뜻이겠다) 내가 육사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