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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es

군대이야기 - 대기병

고부운 2013. 8. 29. 10:16

대기병 내무반에는 기존에 와있던 인원이 우리 아홉명과 비슷한 정도로 있었다. 문제는 대기병 내무반 대장 노릇을하는 내무반장과 그 전입동기 2~3명 은 논산훈련소에서 직접 보안사로 전출된 병력으로써 후반기교육을 받고온 우리보다 단 몇 주라도 후임이라는 것이었다. 인사처 담당자가 우리들을 대기병 내무반으로 인도하면서 짧게 했던 말 "보안사는 전입순이다." 라는 말이 바로 이 경우를 두고 하는 소리였다.

대기병 내무반장에게 심하게 당한 것은 없으나 이것들이 선임기 노릇을 하면서 해라를 했다. 또 사역 차출 배정을 자기들 마음대로 정하는 권력을 행사했다. 우리 아홉명은 회의를 했다. "저것들 밟아버릴까? 우리가 군번도 빠르고 인원도 훨씬 많고..." 회의 결론은 보안사를 잘 모르니 좀 두고 보자였다. 그 다음날 오전, 사복차림 두명이 내무반에 들어 와서는 침상에 서서 침상아래에 내무반장을 세우더니 표독스럽게 구둣발로 마구 차고 짓이겼다. 뭔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살벌하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내무반장과 그 동기들을 밟을 생각은 접었다.

대기병 쫄병의 눈에 보안사가 남다른 부분은 부대내에서 군복 입은 사람들이 별로 없고 다들 머리를 일반인 처럼 기르고 사복을 입고 근무한다는 점이었다. 또 군복을 입은 경우도 있었는데 육군 외에 공군 해군 복장도 보이고 아주 간혹 해병대 복장도 눈에 띄였다.

보안사 대기병은 하는 일이 별로 없다. 평소에는 방위병들이 많기 때문에 사역이 많지는 않았으나 주말에는 여기 저기 사역을 다녔다. 대기병으로 처음 맞는 주말에 하사관식당 배식 사역에 끌려갔다. 다들 사복 차림 아니면 츄리닝 복장으로 식사하러 왔다. 어떤 이는 리볼버 권총을 가죽 총집에 넣어서 뒷주머니에 꽂고 식사하러 왔다. 또 한번은 사령관 등이 식사하는 참모식당에 사역 간적이 있는데 식단의 내용이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정갈하여 왠만한 가정집 보다 훌륭했다. 식기도 일반 식기였다. 참모식당에 근무하는 식당사병 중의 한 명은 당시 꽤나 유명한 일식집이었던 남대문근처 '남문'의 주방식구가 군입대하는것을 알고는 직접 관리해서 차출해온 인원이라고 했다.

어느날 부터인가 본청건물에 있는 어느 부서로 사역차출 배정되어서 일과시간에도 그 사무실에서 일하란다. 매일 하루 종일 끝도 없이 서류를 정리하고 철하는 작업을 했다. 모던타임즈의 찰리채플린처럼 끝도 없이 같은 작업을 반복할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방위산업의 보안을 담당하는 부서였는데 지금으로 말하자면 나는 인턴사원이었고 그 부서에서 OK하면 꼼짝없이 그 부서로 명령이 날 판이었다. 대충의 사정을 눈치 채고는 엉터리로 일했다. 나를 직접 데리고 일을 시키가며 살살 나를 꼬시던 고참에게 무성의하고 덜떨어진 인간이라고 한참을 야단 맞았고 그리고 방면 되었다. 자존심은 좀 상했지만 한시름 놨다. 층층시하 사령부가 싫었고 막연히 그보다는 더 자유스럽고 다이나믹한 군생활을 기대 했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에 집중 보안감사 실시 후거나 뭐나 해서 일이 몰렸고 또 쫄병도 뽑을 겸 대기병을 불러다 썼던거지 매일 그 일만 하는것은 아니었지 싶다. 방산업체 보안감사도 나가고 폼도 잡고 접대도 받고 했겠지.

지루하게 자대배치 명령을 기다리는데 한 달이 넘도록 흘러간다. 소문에 김장 담글 병력이 필요해서 대기병들 명령을 안내고 모은단다. 제길헐, 진짜로 김장을 마치고 나서야 자대배치 명령이 났다. 우리 아홉명 전원이 남한산성 근처에 있는 515보안부대라고 통신보안을 담당하는 부대로 명령이 났다. 보안사 내에서는 515를 '통보리'라고 부르고 약간 서자 취급을 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보안사 업무수행에 대단히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부대로써 보안사령부 예하대 중에서 유일하게 전국단위 부대이다. 나중에 12.12 사태 때 신군부측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

아무튼 1978년 6월30일 입대해서 겨울이 다돼서야 부대단위 명령이 났는데 아직도 자대배치가 아니다. 왜냐하면 515 자체가 또 전국단위 부대였기 때문이다.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