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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es

군대이야기 - 후반기 교육 - 원주통신훈련소

고부운 2013. 8. 8. 17:39

논산훈련소 신병 훈련을 마친 우리는 샛노란 이병 계급장을 달고 북쪽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40명이 같이 배치된 일행이었다. 호송관의 호령에 맞추어서 "간다 열차5소대."를 반복 복창하며 열차를 탔다. 호송관은 우리를 자리에 앉히고는 강원도로 간다는 말과 호송 중 주의 사항을 주고 일행 중 군번 선임병을 호출했다

호송관은 군번선임병을 자기 자리로 불러서 이러 저러해서 비용이 필요하니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어서 달라고 주문했다. 삥을 뜯는거 였다. 열차타고 가면서 군기 잡히고 싶지 않으니 안 주는 수가 없다.

돈을 걷어주니 호송관은 주저리주저리 이런 저런 소리를 하다가 행선지를 알려줬다. 원주통신훈련소로 후반기교육 즉 주특기교육을 받으러 간다는 것이었다. 강원도로 간다는 소리에 인제, 원통 갈까봐 걱정하고 있던 일행들 사이에서 작은 환호성이 일었다. 열차는 밤새 달려 새벽녘에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마침 비가 추적 추적 왔다. 40명이 플랫폼 지붕 밑에서 4열종대로 따블백(더플백)을 깔고 앉아서 시간표도 모르는채 원주행 열차를 기다리는데 불안하고 처량하다. 다 서울놈들이다. 감상이 없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바로 저 담장 넘어 밖을 왔다 갔다 지나 다니며 통학했고 강원도로 어디로 놀러갈때면 늘 이용 했던 청량리역이다.

원주역에 도착했다. 역에 내렸더니 플랫폼에 쌔카만 얼굴에 눈과 이빨만 하얗게 빛나는 단풍하사인지 뭔지와 샛노란 하사 계급장을 단 애들이 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저절로 기가 죽는다. 그 훈련 빡쎄다는 6개월 과정의 제3하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일당백의 용사들. 군기가 바짝 들어서 명령만 내리면 당장 달려가서 북진통일이라도 이룰것 같은 기백들. 해방감에서인지 성취감에서 인지 신이 나서 싱글벙글하는 눈들이 반짝 반짝 보석같이 빛이 났다. 사람 눈이 그렇게 빛나는 건 처음 봤다. 아마도 얼굴이 너무 새카매서 그랬을듯 하고 강도 높은 훈련으로 다져진 군기 때문에도 그랬을듯 하다.

105보를 거쳐서 갔는지 어쩐지 우리 일행은 원주통신훈련소(통훈소)에 인계되었다. 저녁 무렵에 도착한 통훈소는 구형 콘센트 막사로 이루어진 부대였는데 왠지 음산하다. 더구나 무서운 점은 일체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일행간에도 말을 못하게 했다. 훈련소 분위기와는 엄청 달랐다. 실내 조명도 낮아서 더욱 음산하게 느껴졌다. 그냥 살벌하다. 구대장에게 인계되어 내무반을 배정받고 더플백을 풀어서 관물대에 정리하는데 니덜은 선임기들이 관리한다면서 담당 선임기 3명을 소개시켜줬다. 나중에 보니 여기서의 구대장은 평소에 만나볼 수도 없는 하늘 같이 높은 분이었다.

식사

통훈소 1일차 아침, 담당선임기들은 우리를 인솔해서 식당에 갔다. 우리를 한 테이블 앉히고는 그 앞을 딱 지키고선 담당 선임기중 한명이 '식사 실시' 하고 외치면 '일제히 감사히 먹겠습니다' 구호를 외치고 식사 시작해서 바로 담당이 다시 '하나 둘 셋' 하면(딱 3초다) '감사히 먹었습니다' 하고 바로 숟가락 놓고 식판들고 발딱 일어나라고 했다. 짠밥 버리러 가면서 뭘 먹으면 박살 낸다고 경고 했다. 실제로 한 친구가 입을 우물거리다가 즉결처분으로 치도곤이 났다. 통훈소 밥은 논산보다 훨씬 맛있었는데 두 세 숟가락 밖에 먹지를 못하게 했다. 이 미친짓은 몇 일이나 계속됐다. 그리고 이 선임기 놈들 미쳤다. 자기들은 신처럼 행세하고 우리를 벌레 취급한다.

물세례

1일차 밤에 담당 선임기들은 샤워한다면서 우리를 식당 아래에 있는 야외 식기세척장으로 데려갔다. 선임기 몇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4개조로 나누고는 한 개조씩 불빛 한가운데로 발가 벗겨서 세웠다. 저쪽에서는 우리가 보여도 우리는 불빛 때문에 그 쪽이 안보였다. 꼼짝말고 서있으라고 경고하더니 갑자기 디립다 물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어둠속에서 무차별적으로 날아드는 물은 얼음 보다 더 차갑고 엄청나게 쎄서 콧구멍 귓구멍 가리지 않고 파고 들었다. 내가 왠만해서는 겁을 안먹는데 이때는 겁 먹었다. 바짝 쫄았다. 이건 뭐야. 얘네들 왜이러나. 어디까지 하려나?...

상황파악

몇 일간의 통훈소 생활 끝에 상황이 파악 되었다. 우리 40명은 RVC(Radio Voice Course)라고 음성 무선통신병 5주짜리 교육생이었고 이외에 ROC라고 16주를 교육 받는 무선운용병 교육생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선임기라면서 우리를 억압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통훈소에 입소해서 나갈때까지 계속 그들의 쫄병이었다. 여기서 나보다 2주 먼저 들어온 RVC과정의 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그가 나갈 때까지 단 몇 마디 밖에 못나눴다. 처음 그를 발견하고 반가운 눈을 했더니 내색하지 말라고 눈짓을 했다. 나중에 그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여기 이병이 이병 잡아먹는데야. 조심해." RVC는 RVC 후임기가 있어도 선임노릇 비슷한 것도 못하게 했다.(할 생각도 없었지만) 그렇다 이 훈련소의 특징이 딱 "이병이 이병 잡아먹는 부대" 로 표현되고 있었다. 교육생 선임기가 후임기를 관리하며 갈구는 이 전통이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주어 탈영 많기로 유명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훈련소에서는 교육생 단독으로는 움직일 수가 없고 무조건 최소 3인1조로 움직여야 하는 전통이 있다. 우리 RVC 같은 경우는 3인1조고 뭐고도 없이 아예 늘 40명전원이 함께 다녔던 것 같다. 그 이하 인원으로 움직인 기억이 전혀 안난다. 지금도 이해를 못한다. 그때 담당 ROC 선임이라는 것들은 무슨 원칙이나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억압하고 악질적으로 굴었는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천지분간 못하고 정도 조절도 못하는 이런 것들이 권력을 가지면 무섭다. 아버지는 아들을 봐 가면서 때리지만 못된 형은 동생을 지 성질 나는대로 죽어라하고 무자비하게 팬다. 바로 그 짝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분한 생각이 든다.

RVC 교육

RVC는 쉽게 얘기해서 작은 배낭만한 PRC77(약칭 P77)이라는 무전기를 이용한 무선 음성통신이고 우리는 그 P77을 매고 다니는 무전병이 되는 것이었다. 2차대전, 한국전쟁 전투영화에 보면 많이도 나온다. 소대장 중대장을 졸랑 졸랑 따라다닌다. 영화에서 그놈의 무전기는 맨날 총맞거나 해서 고장난다. 적 저격병의 표적 중에 하나라는 얘기도 되겠다. 아무튼 일과 시간에는 RVC 교육을 받았는데 이 시간만큼은 긴장을 좀 풀 수 있었다. 일과시간 이후에 또 점심시간에는 악마같은 담당 선임기의 통제를 받았다. 통훈소 내내 숨도 크게 못쉬었던듯 하다. 육체적인 고통 여부를 떠나서 불과 한달 차이의 같은 이병인 그들은 신이고 우리는 마치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노예와 같았다. 그들의 턱없는 우월감과 도도한 태도를 보거나 그들로부터 학대를 당하면 마음 속에서 부글부글 분노가 끓는데 어쩌랴 군대에서, 참는 수 밖에.

 

선발

40명이 교육을 받는데 초기 2주간에 두 번의 선발이 있었다. 하나는 보안사령부에서 선발하려고 9명을 의무대로 불러서 기본 검사하고 지문채취 해갔다는데 나는 불려지지 않았다. 보안대로 빠져야 하는데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운이 없다 했다.

또 한번, 7명이 의무대로 불려갔는데 나는 그 중에 하나였다. 공수부대 선발이란다. 허걱. 개인장구에 무전기까지 매고 뱅기에서 뛰어내려야 할 판이다. 아닌게 아니라 동기들을 둘러보니 안경 안쓰고 신체검사 1갑종은 몇 명 안된다. 아 공수부대. 그거 간다고 싸나이 되는거 아닐텐데 망했다. 할 수 없이 마음을 다잡았다. 젠장 가면 가는거지뭐. 나만 가는거 아니잖아?

억울하게 억압 강제된 힘든 상황이 많은 군대생활을 견디는 힘은 바로 이것, 그 역경을 같이 겪는 동료가 있기 때문에 견디는 것이다. 혼자서만 당한다고 생각하고, 의지하거나 하소연 할 데가 없을 때 탈영이나 총구를 돌려 겨누는 총기사고 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면회

통훈소에서는 2주교육 후 토요일 오후에 면회가 허용된다. 교육과정이 긴 ROC 넘들이야 어찌 어찌 자기가 통훈소에 있다고 집에 알려서 가족면회도 오겠지만 나는 어디 있다고 알릴 기회가 없었기에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님이 면회를 오셨다. 먹을 것 바리 바리 싸들고. 내 입맛에 딱 맞는 많은 음식들을 잔뜩 먹어가며 한나절을 보냈다. 그리고 나 공수부대 간다고 자랑했다.(살려주세여 ㅜ.ㅜ). 어머님은 확언은 안하셨는데 알았다고 하셨다. 떨어져가는 돈도 보충받고 용기 백배. 남은 음식은 내무반에 가지고 가서 나눠 먹었다.

야외훈련 - 술 사먹으러 이탈하다.

RVC 교육과정에는 야외 훈련과정이 있다. 네 명씩으로 조편성 해서 부대 밖 뒷쪽 능선에 좌악 산개하여 포진하고 각 조간에 깃발을 이용한 수신호 및 무전통화 실습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능선 아래 계곡에 있는 농가에서 야외 훈련하는 훈련병 상대로 술을 판다고 했다. 우리 조에서 누가 술을 사러 갈까 뽑는데 아무도 안나선다. 새가슴들. 선동한 나보고 가라는 눈치다. 당연히 내가 가기로 했다.

나는 우리 조가 위치를 잡고나서 주변 및 훈련 진행상황 등 조금 눈치를 살피다가 바로 튀어 내려갔다. 헐떡 거리며 농가에 도착해서 보니 아무도 없다. 다른 조에서는 안온 모양이다. 농가로 들어서며 조그맣게 "계세요?" 하는데 밉상은 아닌 젊은 여자가 나왔다. 헉, 걷거나 움직이면 얇은 런닝구 하나만 걸친 상반신에 거유가 털렁 털렁 ... 출산한지 얼마 안되는 애 젖먹이는 산모인 모양이다. 정신 차리고 술파냐고 했더니 가지고 나오는데 실망스럽게도 소주가 아닌 샴페인이다. 샴페인 밖에 없단다. 우선 한 병 달라고해서 바로 따서 벌컥 벌컥 마셔 버렸다. 그리고 두 병을 더 사서 냅다 뛰어 올라가는데 올라가는 내내 눈앞에서 털렁 털렁... 입대 이후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여자사람이다.

조에 돌아와서 한숨 돌리고 나니까 조교가 순찰차 왔다. 나는 빨개진 얼굴울 숨기려 참호 외곽 쪽을 향해 사주경계하는 척 하면서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다. 안걸렸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뻔 했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다. 훈련병들은 샴페인만 마셔도 취기가 오른다는 것을. 소주는 감당을 못하기 때문에 안파는 것이었다.

* 논산훈련소에서고 통훈소에서고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평소에는 상당히 소심하고 복종적인데 왜 한번씩 무모한 일을 벌리고 작지 않은 일탈을 하는지. 아마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누구한테도 지배 당하지 않겠다는 반항심이 있어서 이런식으로 표출되는 것이기도 하겠고 또 아버지를 일찍 여위고 여자들만 있는 집에서 자란 탓에 자신의 남자다움을 증명해 보이려는 보상심리에 기인한 소영웅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기질은 나중에 직장 생활하면서도 불쑥 불쑥 튀어 나왔다. 사회생활 하면서 누구에게도 형 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통훈소 수료 및 자대배치

나는 RVC 694기다. 주특기번호 320 무선통신병. 마침내 훈련과정을 수료하고 명령지 한 장에 몇 명씩 이름이 올려져서 호명하는 식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는데... 오마니... 공수부대(특전사령부)가 아닌 육군도 아닌 국군, 국군보안사령부로 바뀌어 있었다. 나 포함 아홉명이 같이 보안사로 명령이 났다. (그전에 나와 같이 선발되어 검사를 받았던 친구들은 진짜로 다 공수부대로 명령 났다.) 우리 아홉명은 호송관에게 인계되어 군용열차가 아닌 일반칸에 탔다. 호송관이 삥도 안뜯고 니덜은 좋겠다며 나중에 자기 만나면 잘해 달란다. 우리 아홉명은 기고만장 해졌다. 용산행 열차를 타고 가며 홍익회 카트에서 맥주를 사마시는데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가면서 서로 이야기해보니 다들 뭔가 한가닥씩 연줄이 있는 녀석들이었다. 나 대신 튕긴 친구에겐 미안했지만 뭐 ...

원주통신훈련소의 기억

내가 그 때 기간병도 아닌 같은 이병이고 교육생인 선임기라는 같잖은 것들한테 당한게 무척이나 억울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통훈소 하면 불쾌한 기억이 앞선다. 이 통훈소는 79년 말에 해체되고 해당 교육과정은 대전통신학교로 이관 되었다고 한다. 대전통신학교는 그 때의 통훈소에 비하면 호텔이요 대학교라고 했다. 군기 쏙 빠진 당나라 군대.

김치저장고 만들 자갈 채취하러 부대 뒷 쪽에 흐르는 강(대야지라고 했던거 같은데 분명치 않다)에 갔었다. 가을 햇빛 청량하고 공기는 당연히 맑고 서늘했다. 강물이 구부러져 돌아 들어오는 곳에서 자갈을 채취 했는데 사방은 조용하니 제법 운치있는 풍경을 보여 주었었다. 강을 포함한 이 부대 뒷 쪽에서는 앞에 이야기한 계곡의 농가 외에는 인적을 본적이 없었다. 아주 호젓해서 인상 깊었다. 아마 이때가 통훈소 와서 처음으로 밖에 나간 외출이자 선임기 없는 일과 외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유난히 상쾌했는지도 모르겠다. 자갈 채취해서 돌아오다 쉴 때 설익은 밤을 따 먹기도했다. 그 계곡은 온통 밤나무 천지 였다. 그 밤을 다 따면 어마어마한 양일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침투방어 훈련 때문에 온부대에 비상이 걸리고 밤 새운 일. 전기조명이 없는 데는 온통 횃불로 밝혀 놓는등 난리법석이었다. 방어훈련 이런거 여기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봤다. 존귀하신 보안대는 이런거 안한다.

 

To be continued - 이상한 부대

* 군대이야기를 적어 나갈수록 그 때 일들 이름들이 새록 새록 생각난다.(내 두뇌에 좋은 일이다.) 이래서 남자들은 군대이야기 나오면 끝이 없다고 하나보다. 그리고 나는 절대 뻥 안친다. 다 실화다.

 

조덕배 - 꿈에 

https://youtu.be/92nsZ2TDw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