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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es

군대이야기 - 입대

고부운 2013. 8. 6. 07:30

요즘 '진짜사나이'라고 연예인들을 군대에 입대시켜 각종 과정을 체험시키는 TV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다. 나이 30,40먹은 연예인들이 훈련병, 이등병이 되어서 훈련도 받고 자대 배치되어 유격훈련도 받는 등 군대생활을 줄여서 겪는 것인데 이들을 눈물 콧물 쏙빼게 만드는 유격 화생방 사격훈련 등등 각각의 상황은 실제상황이었다. 거의 모두가 군대가서 축구를 차본 대한민국 남자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면서 나의 군생활이 떠올랐다. 기억나는대로 군생활을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대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입대를 했다. 신체검사등급은 당당히 1갑종. 원래 부선망독자라 6개월 방위를 가야하는데 작은 아버님댁에 입적되어 있는지라 그냥 육군에 갔다. 입대일자는 78년 6월30일인데 그 몇 일전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당번병(군대 전문용어로는 '따까리'다.), 카튜사, 보안대 중에서 골라봐라." 나는 단호히 거부했다. "그냥 떨어지는대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가기 싫어요." 어머님은 더 이상 말씀을 안하셨다. 

6월30일 당일, 어머님께 모처럼만의 큰절로 인사드리고 아무일 아니라는듯이 집을 나섰다. 그렇게 무심히 떠나가는 아들이 서운하셨었을지도 모르겠다. 고기도 못 먹는 식성에 어찌 견딜까 걱정도 많으셨을게고. 머리도 깍지 않은채로 한양대 옆 사근동에 있는 왕십리역에서 입영열차를 탔다. 전송나온 친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입대 한답시고 1학기를 등록 안하고 휴학했으니 겨울 방학을 포함해서 근 7개월을 기다린 입대라 감흥이 없었던 것이다. 요즘은 자기 계획에 맞추어서 입대 일자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 낭비가 없지만 그 때는 그랬다. 보통 육개월 정도를 놀기 십상이었다. 

기차가 논산역에 떨어지고 훈련소 수용연대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였다. 수용연대 연병장에 입영지역 병력별로 오와 열을 맞추어 세우고는 "군대용어는 다나까다 알겠나?"로 시작해서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바로 '앉아, 일어서,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좌로 우로 죄우로 굴러'를 시키는데 동작이 굼뜬 친구들은 바로 사이 사이 돌아다니는 기간병들에게 무자비한 발길질을 당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의 교련과 집체교육으로 군대문화에 어느정도 익숙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진짜 사나이는 개뿔, "싸나이 찾다가 X됐다."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순식간에 앞으로의 군대생활이 어떨것인지 머리속에서 환하게 정리되었다. 어머님의 제안... 밀려오는 후회...뺑뺑이를 돌려 군기를 잡더니 줄 맞춰서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으라는데 식당에 갔다가 짠밥 냄새에 질려서 그냥 굶어버렸다. 연병장에서 느꼈던 이상한 냄새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저녁 식사시간이 지나 날은 어두워 가는데 조명 하나 없는 연병장에 다시 집합, 그 오른 쪽에 있는 식당에서 역하게도 풍겨오는 짠밥냄새, 저멀리 단상에 선, 얼굴도 안보이는 인간이 뱉어내는 구령에 따라 엎치락 뒤치락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굴욕적인 기합을 받는 나자신의 왜소함, 기간병들의 사나운 욕설과 마치 비인간에게 가하듯 무자비한 발길질에도 눈 한번 치켜뜨지 못하는 나약함.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울컥했고 또 그럴 수 없다는 것에 화가 났다. 

수용연대에서는 가지고온 사물과 입고 온 옷가지들을 봉투에 담아서 집으로 돌려보내는 절차가 있는데 '편지는 넣으면 안된다. 걸리면 박살내겠다'고 협박을 해댔다. 그래도 난 몰래 쪽지를 넣었다. 절박한 마음을 담아 "... XX 아버님께 안부 전해주세요"라고 쪽지에 써서 옷에 집어 넣었다. 보안대로 빼달라는 뜻이었다. 우리기수에는 카튜사 선발이 없다는 수용연대 내에서 떠도는 루머와 너무 막연하고 어떨지 상상이 안가는 당번병을 뺀 현실적인 바램이었다.

보통 수용연대에서 짧으면 3,4일 길어도 1주일 정도면 훈련소로 들어가는데 나는 2주나 대기하다가 훈련소로 들어 갔다. 훈련소로 들어 갈때쯤에는 수용연대 빠끔이가 되어서 낮에는 식사도 거르고 숲속에 들어가서 낮잠을 자고 담장너머로 찾아오는 아줌마에게 사제 담배를 사서 피웠다. 마침내 논산 훈련소로 들어가는데 29연대란다. 당시 수용연대에서 떠도는 소문에 2개 연대가 악명이 높았는데 30연대가 훈련이 아주 쎄고 29연대는 훈련이 쎄고 또 사역이 쎄다고 했다. 운도 없다.

수용연대의 기억

군대는 싸나이 찾는데가 아니다라는 각성, 최소한 쫄병에게는. 머리 미리 깍을걸...수용연대에서 머리 깍는데 한참 고생했다. (지금이야 다르겠지)

수용연대 신체검사에서 성병 진단이 나온 녀석에게 새파란 군의관이 해댄 폭압적이고 모욕적인 욕에 깜짝 놀랐다. (FYM라는 뜻의 욕이었는데) 옆에서 듣는것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고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남의 모친을 그리... 내가 당사자였다면 아무리 소심하고 순응적인 나였데도 앞뒤 안가리고 그 쌍스러운 군의관 놈을 그냥 들이박고 그 욕 취소하고 사과하라고 한바탕 난리를 쳤을 것 같았다.

군대는 기다림이라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나중에 제대할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기다림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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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나온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라는 노래를 노래방에서 불렀었다. 이 노래를 부르는데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내가 입대한다고 떠났던 날 누나도 떠나고 없는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계신 어머님 심정이 어떠하였을까 생각하니 참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