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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es

군대이야기 - 이상한 부대 - 국군보안사령부

고부운 2013. 8. 9. 11:03

토요일, 용산역에 도착했을 때는 어둑 어둑한 저녁이었다. 역에 도착해서 조금 기다리니까 보안사령부에서 나온 인수자가 왔다. 이때 우리들은 원주에서 올라오는 기차에서 보였던 패기는 간데 없이 긴장했다. 어쩔 수 없는 이등병이다. 사복차림의 인수자 머리가 군인 같지 않게 길다. 인수자와 함께 출발하려는데 누가 다가왔다. 인수자에게 수고 한다면서 송학사 ㅇ소령이라고 자기를 소개하고는 나를 지명해서 전출명령에 보안사령부에의 신고 일자가 월요일 08:00이니 자기한테 내주면 틀림없이 시간 맞춰서 들여보내겠다고 했다. 송학사 ㅇ소령? 공갈이다. 아무튼 보안사에서 나온 인수자(아마도 당직사병!)는 계급에 눌려서 머뭇거리다가 현실적인 문제로 일곱 명 이름이 적힌 명령지가 딱 한 장이라서 한 명만 따로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이 명령지 없이 따로 집에 가면 무단 이탈병이 되는 거였다. 그것으로 정리 끝났다. 좋다 말았다. 우리는 인수자가 선탑해서 온 쓰리쿼터를 타고 경복궁 옆 소격동에 위치한 보안사령부로 갔다. 후문에서 하차하여 위병소 앞에 정렬했다. 바짝 쫄았다. 위병들은 모두 190 어림의 장신에 마치 헌병 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하이바를 썼는데 아무 글씨도 안써있고 그 속의 머리는 일반인처럼 길어서 또 군복 색깔도 처음 보는 색이고 달라서 분위기가 이상했다. 이제까지 보던 군부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모든 부서의 근무가 끝난 토요일 밤이니 당연히 인사처 인사 담당자도 없고해서 우리는 일단 경비대에게 인계되었다.

경비대 내무반으로 끌려들어 갔는데 내무반 분위기가 또 전혀 달랐다. 우선 관물대가 이제까지 보던 합판이나 나무로 짠 엉성한 군대 관물대가 아니고 당시 시중의 고급이발소에 있는 옷장 식으로 되어 있었다. 내무반에는 비번이라 츄리닝 바람으로 있던 경비병들이 몇 명 있었는데 이들에게 한 시간 정도의 혹독한 신고식을 치뤘다. 왜 이런 짓, 안해도 될 학대를 하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우리의 신고식을 주도하던 경비대 병사가 우리 9명 중에서 190정도 되는 영수에게 '너는 키가 커서 경비대로 와야 한다''며 관심을 보였으나 나중에 보면 경비대가 힘있는 부서가 아니라서 택도 없는 소리였다. 경비대 병력은 보안사에서 자기네 대문, 작은문의 위엄을 보이기위해, 특별히 신경써서 논산 등의 신병교육대에서 키크고 허우대 좋은 인원 들을 뽑아온 머슴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빽도 연줄도 없는... 당시에 월등히 키 크고 허우대 좋으면 수경사 30, 33경비단, 기동대 등으로 많이 뽑혀 갔고 또 특전사로도 갔다. 보안사도 끗발있는 부대라서 이런 병력을 뽑아 오는 것이었다. 보안사에는 경비대 병력과 같이 자기의 필요에 의해서 연줄 없이도 뽑아 들이는 몇 개의 직군이 있었는데 운전병, 식당사병 그리고 원주통신훈련소에서 우리를 그렇게나 구박하던 ROC병이 그렇다. 그외 나머지는 연줄 없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내가 만나본 부대원 거의 모두가 군대관련 이든 뭐든 크고 작은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이 부분은 공인된 것이 아닌 나의 경험에서 나온 부분이니까 꼭 믿지는 말자. ㅎㅎ)

그 다음 날 아침에 사병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데 깜짝 놀랐다. 통훈소 밥도 나쁘지 않다고 했는데 여기는 거의 집밥에 가깝다고, 아니 그 때는 집밥 보다 좋다고 느꼈다. 예를 들어서 그 날 점심식사 반찬 중에 하나가 생선 튀김이었는데 살만 발라서 튀긴 커틀릿이었다.(보안사에서는 예하 부대로 갈수록 음식이 좋아졌는데 나중에는 부대 내 식당에서 진짜 제대로된 짜장면을 먹기도 했다.)

사령부로 들어올 때의 엄청난 신고식 후에 경비대에서는 우리에게 꼭 단체로 행동 하라고만 하고 더 이상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본관 건물과 나머지 건물의 사무실 지역만 빼고 사령부 내를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래봐야 갈 곳도 없지만 밥먹고 나면 구석진 곳에 모여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안쪽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밖을 내다 보면서 한가하게 일요일을 보냈다. 월요일 아침, 인사처 담당자(사병이었겠지. 다들 머리가 길고 사복 차림이라서 구분이 안갔다.)가 와서 덤덤하게 명령지를 접수하고는 바로 우리를 대기병 내무반으로 데려 가면서 짧막하게 한마디 했다. "보안사는 전입순이다." 우리는 이제 국군보안사령부 대기병이 되었다.

To be continued - 대기병 *이놈의 대기병을 또 한참을 했다.

노래 없다. 앞에도 넣었으니 노래 한 곡 넣을까 했는데 생각나는게 없어서 나중에라도 넣을 요량으로 일단 노래 없다 쳐놓고는 더위에 지쳐 살픗 잠이 들었었다. 그런데 내 아이패드에서 갑자기 아래 노래가 흘러나와서 깼다. 나 참, 아이패드도 더위 먹고 미쳤나? 분명히 내가 튼 적이 없는데 또 최근에는 이 노래를 들은 적도 없는데 ... 어안이 벙벙. 점점 바보가 돼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