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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es

군대이야기 - 1군단사령부 (4)

고부운 2013. 10. 24. 11:53

제대를 몇 달 앞두면 정말 시간이 안간다. 1군단에서의 생활은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사건 사고로 채워져 가며 느리게 흘러갔다. 사고는 주로 저녁에 밖에 나가면서 생기는데 밖에 나가는 주된 이유는 서울, 경기 일원의 동기 녀석들이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나는 마다하는 법 없이 나가서 같이 어울렸는데 한 네번 정도 반장한테 들켜서 찐빠(ㅎㅎ 군대용어?) 먹고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고양 파출소를 부수고 또 한번은 놀러온 녀석이 1군단보안부대 선임하사 모 최고 고참상사의 아구통을 돌리는 바람에 큰 사고가 돼서 좀 기합도 받고는 했지만...

 

주침야근

조장인 나는 근무를 서지 않아도 됐다. 그래도 시간을 죽이는 방법으로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밤근무를 섰다. 내가 밤근무를 서면 졸병들은 숙소에 올라가서 자면된다. 아침에 반장에게 보고서 전송후 전화로 구두보고하고는 잠자러 가는 식으로 근무했다. 이렇게 하면 반장, 선임하사를 마주칠 기회가 줄어든다. 한잠 자고 일어나서는 보안반에 가서 특이사항을 구두로 알려주고 김병장과 같이 밥을 먹거나 하는 등으로 해서 일과를 시작 했다. 저녁 먹고는 보안반 내무반에서 TV를 같이 보거나 군대 꽁치통조림으로 만든 찌개 등을 안주로 술판을 벌였다. 단골 손님은군단에 상주하며 섹터업무를 보고 있는 공군 사병 둘, 이중에 한 친구가 살짝 바이브레이션 까지 들어가는 수준급의 노래와 기타 연주실력을 갖추어서 분위기를 돋구었다. 그의 여러 노래 중 뽕끼 하나 없이 포크송조로 부른 윤수일의 '유랑자'는 정말 좋았었어서 아직도 생각이 난다. 이런 놀이가 끝나면 근무실로 돌아가서 졸병을 올려보내고 근무를 서던지 아니면 교환대에 가서 교환병을 밀어내고 내가 교환근무를 섰다.

한번은 교환을 보다가 교환병 내무반에서 온 전화를 받았는데 교환병 고참이었다. 내가 "통신보안, 어디를 연결해드릴까요?",, "서울전화 꽂아봐.", "그렇게는 안되겠는데요", "이 새ㄲ가 미쳤나? 나 구XX 병장이야, 마", "나 보안대 이병장인데 너 지금 당장 교환대로 튀어 내려와"

나는 이 친구를 좋아하지 않아서 좀 구박했다(때린 것은 아니다). 이 친구는 내가 논산 수용연대 들어갔을 때 바로 우리 앞 주에 들어온 마산 장정이었는데 그 마산 장정들이 몹시도 시끄럽고 거칠고 무례해서 불쾌감을 가지고 있었던 때문이기도 하고 이 친구가 교환대 쫄따구들한테 못되게 굴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밤따먹기

1군단사령부내에는 밤나무가 많았다. 낮에 할일 없는 나는 보안반 방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밤을 땄다. 밤송이를 따고 그자리에서 알밤으로 까내어 커다란 플라스틱 바스킷통에 담고 다녔다.

이렇게 다니다가 역시 방위들을 데리고 밤을 따러 다니는 군단사령부 본부대 선임하사를 만났다. 소위 말하는 인사계인데 사병들은 인사계를 똥싸개라고 불렀다.. 지금은 행보관, 원래 행정보급관인데 줄여서 행보관이라고 한다. 선임하사는 눈을 부라리며 꾸짖는 큰 목소리로 "어이 거기! 누군데 밤을 ... ", " 아 수고 하십니다. 보안대 이병장 입니다." 선임하사 표정이 일그러진다. 뭐라고는 못하는데 자기네 밤을 강도 당하는 기분이었으리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큰 플라스틱 통 2개인 진 3개인지를 채운 뒤에야 밤따기를 끝냈다.

이렇게 모은 밤을 보안반 영외자들에게 또 수고한 방위들에게도 나눠주고 저녁에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밤을 굽고 찌고해서 회식을 했다. 그러고도 몇 일을 두고 먹었다.

군단장 사우나

군단장이 거하는 곳에는 시설 기준이 있다. 테니스코트와 사우나가 그 중 일부다. 어느날 보안반 김병장이 오늘 사우나나 합시다 한다. 호기심에 그러마 했다. 20대 초초반이니 사우나는 뜨겁기만했지 그 효용을 모를 때였다. 또 아직 시중에 제대로된 사우나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아담한 사이즈의 목재로 만든 사우나였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괜찮은 시설이었다. 거기서 모래시계 실물도 처음 보았다. 어쨌든 둘이서 그날 밤에 군단장의 사우나에서 군단장 코스프레를 했다. "어 좋다.. 으흠.. 어 나 군단장인데..." 야간 군단장.

보안사의 위력

뭐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고 어느 오후 주임하사 강상사가 나에게 급히 용산구청에 가서 여러가지 서류를 발급 받아오라고 했다. 자기 퇴근전까지. 용산구청 민원실에서 서류를 발급 받으려는데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었다. 각각의 서류를 떼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몰라서 불안한 부분도 있었고, 늦게 나온터라 마음이 조급해져서 창구로 다가가서 편의를 봐줄 수 있냐고 물으려는데 창구 안쪽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로 꾸짖었다. "어이 거기 줄서서 기다려야지", "아, 죄송한데요, 제가 보안사에서 왔는데, 급히 서류가 필요해서요.", "어? 이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진작 얘기를 하시지" 나이 오십도 넘어 보이는 무슨 과장이었는데 자기가 큰소리로 나무란 것을 되게 미안해하면서 필요서류 목록을 들고는 직접 뛰다싶이 돌아다니면서 서류를 떼 주었다. 나는 기다리면서 음료수를 대접 받았고, 준비된 서류를 들고 나올 때는 공손히 인사까지 받았다. "다음에 또 필요한 서류 있으면 바로 들어와요" 쓸데 없는 사족까지 붙혔다.

그 중년의 구청 과장이 신분증 제시도 안한 새파란 녀석의 '보안사'라는 한 마디에 왜 그렇게 비굴할 정도로 굽신거렸는지를 돌아오는 버스에서 곰곰히 생각을 했다.

이런 모습은 나중에 파출소 습격사건의 피해자인 순경들에게서도 보인다.

당시 내가 아는 X씨는 중부경찰서 형사과를 찾아가서 그 문을 발로 뻥 차고들어가서는 "모형사 어딨어?", " 저 전데여 어떤...?", "너 xx 알지?", "왜 그-?" X는 다짜고짜 기습적으로 그 형사의 팔을 비틀어 꺽어서 엎어뜨려 놓고는 구둣발로 밟아댔다. 그 넓은 사무실에 동료형사가 2,3십명이 있었는데 모두들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쳐다보기만하고 아무도 말리는 이가 없었다. 이 사람의 위세에 눌린 것이다. 조금 지나서야 어떤 중늙은이가 조심스레 다가와서는 "제가 xx계장인데요, 선생님 말씀으로 하세요. 뭐 땜에 그러시는지" " 아 이놈이 돈을 받아쳐먹었는지 ..." 다시 질겅 질겅 밟아댔다.

경찰, 형사들 정말 꼴이 말이 아니었다. 이 사람은 중부서 형사과를 휘저어놓고 나올 때 까지 자기가 어디에 근무하는지 누군지 한마디도 안했다. 그저 공무원 같은 풍모에 기세가 등등했을 뿐이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 사람은 통금이 있을 때도 다니면서 경찰이나 방범대를 만나면 그냥 "수고 많으십니다." 하거나 손만 가만히 올렸다 내리기만 했다. 이 사람을 잡아세우고 신분증 보자는 근무자는 하나도 없었다. 비리법권천이라고 권력이 법을 뛰어 넘어 폭압적으로 위세를 부리는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후진적인 행태였다.

부대에서 짜장면 먹기

1군단보안부대 인원은 많지 않아서 장사병이 다 같은 식당에서 같은 밥을 먹었다. 차이는 장교들은 방위들이 밥을 타다주는 정도다. 이 식당밥의 질은 내가 다녔던 어느 부대보다도 좋았다. 취식인원이 작으니까 당연하기도 하지만 취사병은 각종 식당의 조리경력이 있는 방위들을 특별히 신경써서 뽑아오기도 했고 틈틈이 방위들을 시켜서 각종 채소 농사도 짓고 부식수령시 끗발로 더 받아오기도 했을터였다.

쌈밥도 나오는 등 군대스럽지 않은 메뉴가 많았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짜장면이었다. 매주 토요일 점심에 짜장면을 했다. 중식당 경력의 방위가 있었던거였다. 나는 외박 나가는 토요일에는 본대로 들어가서 한끼 짜장면을 먹고는 했는데 시중에서 파는 짜장면 보다 훨씬 깔끔하고 맛있었다.


뭐 좋은 거 있습니까?

보안반 김병장과 같이 군단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다 마주친, 자전거를 끌고 퇴근하는 식당 주임상사. 김병장이 말을 건넸다. "뭐 좋은 거 있습니까?" 순간 버벅거리는 주임상사 "어? 음~ 김병장~" 김병장은 씨익 웃어주고는 주임상사를 지나쳤다. 주임상사와 저만치 떨어져서는 나에게 말했다. "자전거 뒤에 신문지로 싸진거 봤어요? 그거 뭔지 알아요?", "아! 그거? 음 소고기 겠구나! 그러네요"

보안부대 사람들은 뭐 캥기는게 있는 사람들한테 말을 걸때 웃는 낯으로 바로 이 "뭐 좋은거 있습니까?" 라고 한다. 이 인사를 받는 당사자들은 가슴이 철렁 할게다.

내가 2기갑에 잠깐 있을 때 밥은 깨끗히 하나 싶어서 식당 조리장 안쪽에 들어가본 적이 있었다. 마침 여러 상자의 동태를 다듬고 있었는데 동태알이 나오면 마치 버리듯이 조리장 바닥 가운데로 던져 버렸다. 이거 왜 이러는거냐 물으니 버린단다. '어쭈 요것들 봐라 ... ' 내가 거기 오래 있었다면 술안주로 그 알 많이 넣고 동태탕 얼큰하게 끓여 달라고 했을텐데. 별일이라는 듯이 눈 한번 크게 뜨고는 돌아나왔었다.

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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