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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es

티베트

고부운 2022. 7. 30. 14:50

오래전에 혼자 인도에서 런던으로 가는 밤 비행기를 탔다. 브리티쉬 에어(BA). 인도에서 국제선은 거의 모두 한 밤중에 출발한다. 선진국 중심으로 비행시간표가 짜지기 때문이다. 여기저기를 거쳐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출장길이었는데 이 구간은 비지니스 좌석을  받았다. 회사 비행 편 담당 여사원이 단 몇 시간이면 될 한 구간을 열 몇시간 넘게 한참을 돌아서 가는 좌석밖에 못 잡아준 게 미안해서 슬쩍 이 구간을 올려 준 것이라고 했다.

집 떠난지 벌써 여러 주가 지나서 피로감도 쌓여 있었고 마땅히 쉬어야 할 야밤에 긴장되이 겪어내야 하는 공항 시큐리티 통과, 탑승수속 그리고 출국심사 과정이 피곤스럽다.

비행기 이륙 직전에 옆 자리에 젊은 인도 아가씨가 앉았다. 이코노미에서 좌석을 올려서 온 거 였다. 평범한 외모에 아직 여드름도 남아 있는 앳된 얼굴, 비행기 탑승이 익숙지 않은지 불안해하며 자신이 없는 몸가짐이 보인다. 나는 적극성 없는 작은 눈짓 손짓으로  좌석 벨트 채우기 등 이런저런 사용법을 가르쳐 줬다. 가만 생각해 보니 항공사의 좌석 승급 룰에 맞지 않아 보이는 그녀다. BA에 친척이 근무하나 아니면 사돈의 팔촌 힘을 빌렸나? 아니면 … 아무튼 인도도 인맥의 힘이 중국 못지않다.

아가씨는 낯선 공간과 분위기에 눌렸는지 불안해하는 기색이 완연하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시간이 조금 흘러서 아가씨는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는지 말문이 열렸다. 아가씨는 영국에 사는 인도계 신랑과 중매로 결혼해서 식을 올렸고, 이제 서류수속이 끝나서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신랑이 기다리고 있는 런던 시댁으로 가는 길의 새댁이었다. 몇 마디 얘기 후 그녀를 짓누르고 있는 불안감의 정체를 알게 됐다. 인도 사람들의 고부간의 갈등, 시어머니의 유세도 예전 한국 못지않다. 알지 못하는 미래로 가는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더 덜어내려는 듯 이것저것을 묻는다. 밤 비행기라서 잠을 좀 자야 하는데 새색씨는 계속 말꼬리를 있는다. 이런저런 얘기에 이 처자의 입지가 어떤지 어렴풋이 그려지니 안쓰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새댁은 시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다. “아줌마야,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당신의 시간이 올 거다. 용기를 가져라” 했다. 

잠이 밀려와서 이야기를 접고 이어폰을 끼고 비행기에서 제공하는 음악을 찾았다. 이 채널 저 채널로 돌려 보다 걸린 인도 전통 음악인지 뭔지 애잔한 여자 노래, 집중해서 들어보니 애잔을 넘어 슬픔이다. 그 구슬픔이 옆자리 처자의 처지까지 겹쳐서 내 심금을 울린다. 옆 자리 처자한테 어떤 노래인지 물어볼까 했는데 노래가 끝나 버렸다. 나중에 강렬하게 끌렸던 그 곡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이런저런 인도 곡들을 들어 보는데 느낌이 많이 달랐다. 결국 못 찾았다.

세월이 한참 흐른 어느 날, EBS의 히말라야 여행 다큐 ‘무스탕 … ‘를 보는데 배경음악으로 잠깐 흐르는 곡, 세상이 좋아져서 여러 검색 수단을 동원해서 찾아보니 EBS에서 밝힌 곡목이 티베트의 Kelsang Changka 였다. 그 Kelsang Changka를 아무리 구글링해도 안 나온다. 빛과 소리의 보고인 YouTube에도 없다. 최후의 수단으로 휴대폰의 노래 찾아주는 앱에 그 짧게 나오는 곡을 들려주니 신통방통하게도 찾아줬다. Voice from Tara - 12 Chang Ga. 제목이 달라서 안 나온 거였다. 

[ 사실은 이 곡도 내가 찾던 그 곡이 아닌 듯하다.]

티베트어를 들으면 다른 어느 나라 언어보다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아마도 티베트어의 발성이 한국어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단어가 달라서 그렇지 성조가 없거나 미약한 그들의 언어는 어찌 들으면 우리네 사투리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서러움 같은 비감은 물 흐르듯 내 마음을 어루만진다. 

황량하고 척박하기 짝이 없는 히말라야 산간에서 문명의 온기는커녕 살아남기 위한 끝이 없는 노동으로 간신히 얻어지는 최소한 것들로 고단하고 빈한한 삶을 이어가는 그들. 웅장하고 유장하기 짝이 없지만 척박하고 황량하기 또한 비할 데 없는 히말라야의 자연. 왜 그 어려운 곳이 삶의 공간이 되고 그 난폭한 기후에 짓눌려서 살아가나 묻고 싶기도 하지만 그 얼마나 쓸데없는 소리인지를 안다. 거기서 태어나고 거기밖에 주어진 삶의 터전이 없고 그나마 일 년에 한번 반짝 찾아오는 생명이 넘치는 여름이 있어 삶을 영위할 틈을 내주기에 살아가는 거겠지. 히말라야 티베트인 관련 다큐 ‘학교 가는 길, 차다'을 보면 어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길의 간난신고에 눈물이 난다. 어느 프랑스녀가 티베트인들 속에 뛰어들어 찍은 다큐 '히말라야 여자의 인생'에 담아낸 그네들의 일상을 보면 체념과 슬픔 같은 게 느껴진다. 별 다른 희망을 품을 수 없고 그냥 살아지니 사는 모습이 처연하다. 내용 중 눈이 안보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이어가던 한 할머니는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을 하는데 그냥 하는 푸념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13살 여자아이는 자기가 캐낸 감자 한 포대를 이고 집으로 옮기는데 그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서 기어가기도 한다.

무슨 대단한 것을 이루기 위함이 아닌 단지 살아남기 위한 끊임없는 노동이 그들의 전체적인 삶을 짓누른다. 그 척박한 환경에서 일생을 간단없는 노동으로 채워야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는 피폐한 삶의 비애가 그들의 정서에 녹아있는 듯하다. 그럴수록 그들은 그나마 위안을 주는 종교에 천착하고 헌신하는 것 같다. 없는 살림에 종교 그 자체가 적지않은 부담이될 법도 한데 기꺼이 감내한다.

(그네들의 오체투지 라싸 성지 순례 대장정을 생각하면 말을 잊는다. ㅈㄱㄴ ㅁㅇㅇ ㄱㅇㅇㄷ. 나는 종교에 호의적인 사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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